미리 잘 챙겨야

 

<6월 21일> "내일, 학교가기 싫다. 그런데 내가 선생이니...." 새벽 4시에나 잠이 들었나 보다.  교원인사위원회 참가해야 해서 두 시간을 운전해 출근했다. 8시에 출발했는데 중부고속도로에 차량이 많아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회의 시간 5분을 남겨두고 도착했으나, 회의를 시작할 분위기가 아니다.

 

특정 과목을 강의할 강사 채용을 다루는 교원인사위원회의이다. 신입 담당 직원이 처음 진행한 터라, 미리 잘 챙기지 못한 점이 서너 곳에 보인다. 서류 검토하는데 발행 기관 관련 문제점도 보인다. 30분 가량 면접하고, 평가서 작성하다... 군말없이 이름 석 자 남겼다.

 

다시 운전해 집으로 가는데, 직원이 잘 준비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중간관리자 역할이 아쉽다. 한참 더 달리는데 선임 교수님께서 전화하셨다. 점심 먹으러 오지 않냐고 물으신다. 집에 거의 다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집에 무슨 꿀단지가 있냐고 하신다. 사실은 학교에 오래 머물러 있고 싶지 않기에, 길을 서둘렀다. 집에 오니 1시, 아내와 딸은 이미 점심을 먹었다. 밥이 없다기에, 라면 한그릇으로 끼니를 떼운다. 

 

운전 4시간 그리고 고공행진하는 휘발유 값, 아깝다. 미리 잘 챙기면 서로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으련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아쉬운 일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6월 22일> 헬라어 1 기말고사를 색다른 방식으로 치른다고 했다. 자기가 있는 데서, 시험지를 받아 출력해 변화표와 단어장을 참고해 푸는 방식으로. 미리 출력할 준비를 하라고 했건만, 이런저런 이유로 몇 학생이 출력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 활용에 편리하게 배려했는데 미리 준비하지 않은 태도에 마음이 불편하다. 진행해, 말아... 하여튼 첫 학생은 한 시간만에 제출하고, ... 마지막 학생은 거의 두 시간 반만에 제출했다. 그 시간에 내 마음은 편하지 않고. 곧바로 엄하게 채점해 성적을 정리한다. 알린 대로 미리 잘 챙겼으면 좋으련만.

 

<6월 22일 늦은 오후> 요즘 무더위이다. 내가 즐기는 피서는 자전거를 타고 냇가로 가서 다슬기 잡기이다. 도심지에서 십리 길만 가도 다슬기를 잡을 수 있다. 안경, 신발, 양파 자루 따위를 챙겨 한 시간 가량 잡았는데 양이 적지 않다. 엊그제는 앙파 자루를 챙기지 않아 불편했는데, 역시 미리 챙기니 좋다.

 

자전거로 월평공원 오돌토돌길 달려 가수원교에서 돌아섰다. 그런데 정수원 입구에서 오돌토돌길로 빠지는 데서 긴급 상황이 벌어졌다. 한 사람이 자전거 낙차 사고로 심하게 출혈하고 기절 상태다. 그때가 7시 즈음이라 퇴근하시던 분이 자기 집 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시느라 분주하시다. 그분이 119에 연락하는 사이, 다행히 그분은 곧바로 깨어났다.  사고 자전거를 정리하고, 수건으로 출혈 부위를 닦고, 핸드폰을 주워 가방에 넣어 드렸다. 부축해 편하게 앉게 하고 심호흡으로 안정하게 했다. 119 구급대가 도착해 그분을 응급 치료하고서는 응급실로 데려갔다. 집주인은 자기 집 앞에서 벌어진 일로 크게 놀라셨다. 두 분 모두 평안하기를, 나도.

 

사실,  정수원 입구에서 월평공원 오돌토돌길로 빠지는 데는 위험 요소가 있다. 아스팔트 길에서 자갈 길로 바뀌는데다 조금 내리막인데 짧은 간격으로 요철 심한 데가 두 곳이다. 갑자기 속도를 낮추며 요철 부위에서 자건거 균형 잡기가 어려워 낙차 사고나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나도 수십 차례 지나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한두 번은 균형을 잃을 뻔도 했다. 수시로 바뀌는 노면 상태에 대비해 안전하게 달리는 게 아주 중요하다. 

 

사실, 어느 취미 생활을 하든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안전 장비를 미리 챙기는 일이다. 그분이 헬멧을 쓰셨다면 출혈에 기절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자전거 장갑을 끼셨다면 손바닥에 찰과상을 입지 않았을 텐데. 자전거 타이어가 2.2cm를 넘어 두툼하고 돌기가 있었다면 균형을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미리 잘 챙겨야 한다!

 

그래, 무슨 일을 하든 미리 잘 챙겨야 한다. 딸이 결혼하고도 집에서 출퇴근하느라 짐을 옮기지 못했다. 이제, 오는 주말에 짐을 신혼집으로 옮기는데, 미리 잘 챙겨줘야 했다. "딸, 어서 일어나렴. 네가 좋아하는 책을 담을 박스 주으러 가자!" 아내는 짐을 신혼집까지 옮겨주자고 한다. 아내가 딸을 보내려니 마음이... 그래서인지 미리 잘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