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힘. 딸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을 읽다가, 한참을 곱씹고 이곳에 옮긴다.
도대체 '문학교육'은 언제쯤 본질을 다시 탐색할 수 있을까. 캡쳐한 것들은 JTBC 예능 "학교다녀오겠습니다" 방송분의 일부다. "시를 언제 쓸까?"라는 교사의 질문에 출연자들은 힘들 때, 생각이 많을 때, 무언가 얘기하고 싶을 때 라고 답하며 수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교사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시를 쓰는 경우에,' 라고 전제를 붙이면서 희노애락과 같은 정서가 중요하고 주로 사랑 그리움 이별했을 때 시를 쓴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나는 일반적인 사람일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시 쓰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문창과 학생들은, 습작생들은 일반인일까 아닐까.
나는 스스로 습작생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럽다. 하지만 대학생활 내내 시와 가장 가깝게 지냈다. 나는 어떨 때 시를 썼을까? 궁금해져서 졸업작품으로 냈던 파일을 꺼내보았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희노애락'과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쓴 시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세어보는 일도 참 이상한 짓이다.) 아마 질서없이 부유하는 잔상들을 우리말의 질서로 옮겨보려고 용썼던 것이 내가 했던 '시 쓰기'였던 것 같다. 더 솔직히는 시숨에서 합평하기 위해서 시를 썼다.
그놈의 사랑, 그리움, 이별. (나의 경우지만 저런 걸로는 전혀 시 쓰고 싶지 않다.) 저런 내용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일이 있다. 어느 국문과 수업을 들을 때 만해 '님'과 김소월의 '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고등학교때와 마찬가지로 님을 해석에 따라 연인, 조국, 종교적 절대자 등으로 볼 수도 있으며 님에 대한 태도에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수업 내용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그 내용에 대해 들었던 나의 생각이 무리한 생각인지 교수님께 여쭤보고싶었다. 나는 이중전공자였기 때문에 국문과 학생들 틈에서 소심하게 순서를 기다리다가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교수님의 답변이 충격이었다. "어쨌든,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건 교재에 나온 내용에 한해서이기 때문에 다른 얘기는 못 해주겠네요." 하마터면 대학수업 자체에 흥미를 잃을 뻔했다.
그저 시대적 테두리 안에서만, 어떤 감정이냐는 정언적 테두리 안에서만 그 시들을 읽을 수 있는 걸까.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는, 시에서 희노애락을 찾고 사랑, 그리움, 이별이 시의 주된 정서라고 강조하는 교육이 왜인지 '시'라는 갈래에서 '대중시'라는 하위갈래를 상당한 거리로 떨어뜨려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이지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다.
그러니, 차라리 과목 이름을 문학 말고 '국문학사'라고 하는 게 덜 억울할 것 같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고등학교 때 비문학만 공부했다. 문학공부를 할 때면 번번히 불만투성이였다. 작가의 '의도'를 묻고 '주제'를 묻는 문제들. 하나의 비평사조가 학생들을 꽁꽁 가둬버리는 이상한 과목. 내가 문창과에서 배운 가장 큰 것은 작품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그 자체로 보는 것이었다.
예능 보다가 이 무슨 난리인지. 물론 작품을 문학사적으로 보고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문학교육은 대체로 문학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문창과에서의 경험이 더욱 소중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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