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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새 이름 Petros

[출판 문화]/문화예술 Culture & Art

by 에이레네/김광모 2016. 5. 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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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 뮤/지/컬/페/트/로/스


우리의 새 이름 Petros


김효경

<보슈>편집위원

<KU Sejong> 편집위원 역임


내 이름은 효경이다. 가끔 재미 삼아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제 이름 한자가 뭐일 것 같아요?”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한 가지 답안을 내놓는다. 도덕책에서 배웠던 유교 경전 효경(孝經)과 부모를 잘 섬긴다는 의미의 효경(孝敬). 대부분은 후자로 답이 모인다. 설마 진짜 경전일까 싶으니. 전자든 후자든, 내 이름에 대해 사람들이 떠올릴 이미지는 비슷할 것이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큰 사고 안 치며 살 것 같다는.

부모님은 생각이 다르실 수도 있지만 일단 그럭저럭은 그 이미지대로 살아온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봤다. 만약 내 이름이 효경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다른 삶이 펼쳐졌을까 하는. 한 사람의 이름은 스스로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꽤 중요하다. 꼭 의미가 읽히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름 단어가 주는 느낌만으로 누군가의 인상을 가늠되기도 하지 않나. 느낌적인 느낌 아니까. 이름에 관해 이 정도의 생각을 하던 중,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뮤지컬 <Petros>를 보았다.

뮤지컬 <Petros>는 예수님께서 평범한 어부였던 시몬을 베드로라 부르시며 제자로 받아들이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시기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Petros>의 특징은 이 모든 이야기를 예수님이 아닌 베드로의 시각에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라는 이름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데, 제목은 왜 Petros일까. 뮤지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익숙함에 가려져 있던 베드로 이름의 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시몬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그 믿음을 인정받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Petros, Πετροσ, 반석)’가 됐다. 베드로는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했다. 메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세력이 점점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세우던 중, 예수님은 예언하셨다. 닭이 울기 전까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반석이라고 하셨으니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나사렛사람 예수를 아느냐고 수군거리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외면했다. 세 번 외면했다. 그리고 닭이 울었다. 이 일은 베드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닭이 울자, 베드로는 자신의 바닥을 확인한다. 교회의 반석이 되리라 하며 지어주신 이름인데 반석이 되기는커녕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으니. 스스로 실망하고 자책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때,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다시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베드로는 자신이 유다와 마찬가지라며 예수님을 따를 자격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유다와 다르다고 하시며 베드로를 품어주셨다.

베드로와 유다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의 바닥을 확인한 이후의 행동이다. 유다는 가책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이후의 생을 차단해버렸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 돌아오셨음을 믿고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셨을 때 자신의 바닥을 딛고 일어섰고 중심을 되찾았다. 바로 그때가, 베드로가 진짜 베드로(반석) 되는 순간이었다.

<Petros>의 이야기 구조는 액자식이다. 이 구조는 베드로 이름의 의미를 우리에게 잘 전해준다. 베드로와 제자의 장면으로 시작해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베드로와 제자의 장면으로 돌아온다. 베드로의 제자는 자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제자 될 자격이 없다며 위축돼있었다. 그런 제자에게 베드로는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드로는 무사고(無事故) 반석이 아니다. 깨져본 반석이다. 깨진 전과만 있는 반석이 아니다. 흠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수를 마친 검증된 반석이다. 그래서 제자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낙심했던 제자는 베드로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고 다시 베드로를 따라나선다. 예수님에서 베드로로, 베드로에서 베드로의 제자로. 내리사랑, 내리반석이다. 베드로의 제자는 또다시 누군가의 반석이 됐을 테고, 그 고리가 계속 이어져 지금의 우리가 있다.

그래서 Petros는 베드로만의 이름이 아니다. 우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이미 아셨음에도 베드로가 자신의 과오를 고백했을 때 받아주셨다. 베드로는 곧 우리다. 우리는 다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가장 소중한 믿음을 마음 밖으로 치워놓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겐 돌아갈 품이 있고, 디딜 반석이 있다.

나는 선량한 기운을 풍기는 내 이름을 매우 좋아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붙여주신 베드로라는 이름이 기뻤겠지만, 그만큼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죄책감이 컸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베드로에게서 내 모습을 본 것 같다. 이번 뮤지컬은 대전을 중심으로 오랜 시간 활동해온 극단 드림과, 뮤지컬 극단 테라가 함께 제작한 창작극이다. 그동안 예수님의 삶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이야기를 베드로의 관점에서 보니 또 다른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ll4worship.net/?p=1501


이미지 출처: http://www.all4worship.net/?p=1501


극본/작사김경희
작곡김권섭, 정수화
연출주진홍
음악감독김지선
안무임경희, 이정진
예술감독이충무
제작극단 드림, 뮤지컬 극단 테라


※ 밝힘: 감상평 필자 김효경은 이 블로거의 딸이다. 
           K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
           대전 파랑새의원 유병국 원장님의 초대로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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